드디어 아들 수능이 끝났다. 이제 수험생 엄마가 갖는 부담감에서 해방됐다. 그동안 예민한 수험생 자녀를 두고 눈치 아닌 눈치를 보고 이런저런 비위를 맞추며 살았다. 다른 부모들에 비하면 크게 신경 쓴 편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제 시험 끝날 시간이 되어 아들을 태우러 갔다. 시험치르는 교문 앞에 가서 깜짝 놀랐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 100명은 족히 되는 부모들이 서 있었다.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하긴 사회인이 되기 위한 첫 관문이자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기도 하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이 들어가는 문은 넓고 나오는 문이 좁았으면 하는 생각. 즉 들어가기는 쉬워도 공부하지 않으면 졸업이 힘든 그런 대학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들어갈 때 온 힘을 다 쏟아부으니 들어가서는 당연히 공부할 여력이 없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물론 예전에 비하면 취업의 문이 좁아져 요즘 대학생활이 치열해졌다고 하지만 좀 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미래지향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중앙일보에서 한 기사를 읽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수형(45)교수 이야기다.
그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행정고시(42회·재경직) 차석까지 차지하며 공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자신의 역량 부족을 실감했다고 한다. 공무원 2년 차 세계 무역기구(WTO) 협상장에서 "(역량이 부족한) 내가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앉아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 2002년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유학을 떠났다. 휴직으로 간 유학생활이 길어졌고, 5년을 넘기면서 면직되어 민간인 신분이 되었다.
그런 그가 지난 11일 구글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 인공지능(AI) 경진대회 '캐글' 데이터 분석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 시대의 교육환경 및 불평등'을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서 AI 교육서비스 계층별 양극화를 규명했다. 주최 측이 제공한 미국의 AI 교육서비스 이용 데이터에 경제학 데이터를 접목해 입체적으로 분석한 점을 평가받아 최종 우승 5팀 중 1팀으로 선정됐다.
한국에선 내로라하는 우등생이었지만 그는 사실 한국 교육에 회의적이다. 막상 올라선 국제무대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혔던 경험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이 부족한 걸 느끼며 "더 많이 알고 싸워야겠다'는 생각에 유학을 결심했다면서 "서구권에선 늘 건설적으로 비판하기를 훈련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않았다"며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서울대에 왔는데 뭘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남은 게 뭔지 생각하면 허무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학부모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작은 일이라도 성취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꼭 공부일 필요는 없다. 한국에선 꼭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성취감이 높은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성취감과 자신감을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다"면서다. 또 "아이들이 '주어, 동사, 목적어'를 써서 정확히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대화를 많이 나눠라"라고 당부했다. 그는 "모든 정신적, 금전적 투자를 대학입시까지만 올인하는 것 같다"며 "마라톤 거리를 전력 질주하다 보니 올림픽에 가기도 전에 전국체전에서 탈진해 쓰러지는 격"이라고 했다. "최종 목적지까지 가려면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아들이 어릴 때 이런 저런 교육(?)을 시켰다. 한자, 고전 읽기, 글쓰기, 독서 후 감상문 쓰기 등 나름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더랬다. 하지만 머리가 클수록 꾀를 내며 빠져나갔다. 그렇게 포기한 이유는 대학을 위한 공부 때문이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어차피 학교 공부 그 이상이 될 순 없었다. 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타도 생기부 한 귀퉁이에 참고 사항으로 끝날뿐이었다. 학교에서 중요한 건 성적이니까. 대학교 갈 때에도 가장 중요하게 치는 건 성적이다. 운동을 잘하고 시를 잘 써도 그건 그냥 참고사항일 뿐이다.
수능이 끝나서 홀가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또 다른 걱정이 생길 것이다. 앞으로 아들이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 중요한 취업문제 같은 것. 대학에 가서 어떤 공부를 할지 모르지만 각 아이들마다 특성에 맞는 교육이 아닌 획일적인 교육을 받게 되면 우리 아이가 졸업할 즘엔 각자 다른 특성의 아이가 아닌 창의성이 결여된 획일화된 아이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졸업 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택하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다른 이들의 길을 따르지 않을까.
아이들 어릴 때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어 나름 노력(?)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난다. "평범한 아이보다 자유롭게 키우기 위해서는 몇 배, 몇십 배의 노력이 필요해. 그 정도로 어렵다는 얘기야."
그런 거 같다. 특히 학벌이 중요시되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더 그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