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한복판에 약 1300평(4189㎡)의 넓은 나대지가 매물로 나와 건설업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강남구 도곡동 옛 힐스테이트 갤러리(현대건설 상설 주택전시관)가 있던 자리다. 현대건설이 15년간의 임대차 계약을 끝내고 최근 주택전시관 건물을 철거하는 원상복구(계약 이전 상태로 복원) 작업을 해서 현재는 빈 땅이다.
이 땅의 지목은 강남에서 찾아보기 힘든 '답(논)'이다. 토지 용도지역은 고층 주택을 지을 수 있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이라 땅값은 평당(3.3㎡) 1억6000만원 정도다. 부지 전체 가격은 2000억 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땅주인 알고보니
놀랍게도 이 땅의 주인은 일명 '컨테이너 할아버지'였다.
1층 주차공간 일부를 유료 주차장으로 운영했는데 주차장 한쪽에 6평가량의 컨테이너를 두고 그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얼마 전 땅 주인이었던 A 씨가 작고하면서 이 땅이 매물로 나오면서 A씨가 땅주인임이 밝혀졌다.
힐스테이트 갤러리를 드나들던 수많은 현대건설 직원들은 A 씨를 컨테이너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A씨 부부가 너무 검소하게 생활하셔서 A씨가 땅 주인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도곡동 주민 김모(61)씨는 "힐스테이트 갤러리 인근에 A씨 소유의 낡은 집이 있긴 했는데 A씨 부부는 컨테이너에서 음식을 해 드시고 컨테이너 내 간이침대에서 쉬시는 등 거의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셨다"라고 전했다.
말죽거리 토박이, 1974년 농사짓기 위해 논 매입
A씨는 1974년에 농사를 짓기 위해 논을 매입하였고 이는 강남이 개발되기 훨씬 이전이었다. 말죽거리로 불리던 그 일대는 1980년대 초까지 논과 밭이어서 겨울이면 논을 스케이트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도곡동 주민 박모(65)씨는 "A 씨는 말죽거리 토박이로 강남이 개발되기 전까지 그 일대에서 농사를 지었다"며 "농지가 도회지로 바뀌면서 A씨는 보유하고 있던 다른 땅에 빌딩도 여섯동 지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부동산을 빌려 썼던 수많은 임차인으로부터 적잖은 임대료를 받았을 '강남 부자'가 왜 주차장 한쪽 컨테이너에서 궁색하게 생활했던 것일까?
A 씨 소유 부동산의 일부를 관리하는 도곡동 삼성부동산 박종순 대표는 "A회장님 자신이 편하게 살기 위해 임차인들의 임대료를 올리는 건 임차인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늘 강조하셨다"라고 말했다. 또한 부동산 관련 세금이 계속 늘어 주차장 관리하며 돈을 벌어도 생활에 크게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30년 전 임대료 그대로
그는 "A회장님은 30년이고, 20년이고 한 번 정한 임대료를 절대 올리시지 않았다"며 "임차인들에겐 더없이 큰 은인이셨다"라고 말했다. A 씨 소유 상가에서 10여 년간 장사를 했다는 김 모 씨는 "A회장님 유족들이 임차인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며 부고도 안 전했다"며 "뒤늦게 A회장님 빈소에 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